교수진

  • 교수진소개
  • 명예교수 소개
  • 교수칼럼

교수칼럼

교수칼럼 게시글의 상세 화면
국인은 왜 설날 나이를 먹을까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1-08-19 조회수 613

설이 지났으니 이제 대한민국 땅에 있는 모든 사람은 싫든 좋든 한 살을 먹었다. 왜 우리는 각자 자신의 생일이 되어서가 아니라 새해 1월 1일이 되면 모두가 함께 한 살을 먹을까? 이는 나이를 재는 단위인 ‘살’이 ‘설’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즉, 한 ‘살’을 먹었다는 말은 한 ‘설’을 맞았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스물다섯 살이면 스물다섯 살이지 그 뒤에 개월 수를 표현하는 법이 없다. 그것은 지내온 시간이 아니라 ‘설’을 몇 번 보냈느냐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이’는 ‘낳다’에 접미사 ‘이’를 붙어 생겨난 말로, ㅎ이 탈락하여 ‘나이’가 되었다. 낳은 날로부터 얼마가 지났는가를 따지는 단위이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가를 측정하는 방식은 서양처럼 단순한 양적 개념이 아니다. 한국인에게 ‘나이’는 시간의 눈금에 인간을 위치시켜서 측정하는 개념이다. 즉 인간이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라 흐르는 시간의 눈금에 인간이 위치할 뿐이다. 시간, 즉 자연이 주체이고 인간은 객체인 것이다.
 
시간이 간 만큼 먹는 서양식 만(滿) 나이와 달리, 우리의 나이는 저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 내가 어디에 존재하는지를 말할 뿐이다. 만일 내가 스물다섯 살이라고 하면 스물다섯 번의 설을 보냈다는 의미이다. 물론 여기에 수태 기간 1년으로 인해 태어나면 바로 먹는 한 살이 포함된다.
 
나이를 세는 단위인 한자어 ‘세’(歲)도 마찬가지이다. 이 또한 ‘해’를 뜻하므로 설날인 1월 1일에 해가 바뀌는 것은 ‘살’과 매한가지이다.
 
이 같은 동서양의 나이에 관한 관념의 차이에서 우리는 서양의 인간 중심주의와 동양의 자연 중심주의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쯤에서 왜 ‘살’이 ‘설’과 동의어인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살’과 ‘설’은 모음 하나의 차이만을 보여주는 짝인데, 우리말에는 이 같은 모음교체형 단어들이 매우 많다. 짐승의 수를 셀 때 쓰는 ‘마리’도 본래 ‘머리’를 뜻한다. 세 ‘머리’는 세 ‘마리’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도 ‘인(人)당’의 의미로 ‘두(頭)당’이라는 말을 쓰듯이 머리의 수로 개체 수를 세는 습관을 반영한 것이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고 할 때의 ‘실마리’도 바늘에 꿰어야 할 ‘실머리’에서 온 것이다.
 
어떤 것의 풍미에 대해 말할 때도 음식의 경우에는 그것이 ‘맛’(味)이 있다고 하는 반면, 옷이나 차림새의 경우에는 ‘멋’이라고 한다. 또 물건이 오래되면 ‘낡다’라고 하는 반면, 사람이 오래되면 ‘늙다’라고 한다. (크기, 부피가) ‘작다’와 (수량이) ‘적다’도 같은 어원이다.

 

 

‘맑다’와 ‘묽다’도 투명하고 무른 액체인 ‘물’(水)에서 파생된 단어들이고, ‘밝다’와 ‘붉다’도 ‘불’(火)에서 기원한 말들로 본래 동일한 의미에서 출발했다. 이처럼 모음교체는 한국어의 매우 특징적인 속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보다 넓은 의미의 모음교체는 여러 언어에서 관찰되는 비교적 보편적인 현상이다. 위에서 우리가 살펴본 영어에서도 이를 볼 수 있는데, 예컨대 ‘노래하다’를 뜻하는 동사의 활용형인 ‘sing - sang - sung’이 그러하다. 동일한 의미를 나타내면서 현재, 과거, 과거분사형의 문법적 의미 차이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말의 나이 개념이 서양의 그것과 사뭇 다르지만, 모음교체 현상에서 동서양은 다시 만난다. 그것이 인간이고 그것이 언어의 세계이다.
 
 
박만규 아주대 교수·불어불문학
교수칼럼 게시판의 이전글 다음글
이전 당신의 꿈은 직업을 갖는 것입니까? -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대한 반응
다음 가난이 왕따가 아니었던 시절
  • 목록 인쇄[새창열림]

빠른 이동 메뉴

quick
  • potal
  • 중앙도서관
  • 학사정보
  • 장학정보
  • 증명서발급
  • 취업정보
  • 헬프데스크
  • 카페 프랑코폰
  • 어학능력 향상 장학금
  • 교환학생
  • 전국고등학생 프랑스어대회
  • 프랑코포니 트랙
글자화면확대화면축소top
아주대학교
  • 우)16499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월드컵로 206 아주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대표전화:031-219-2822
  • COPTRIGHT(C)2013 Department of French Language And Literature. All Right Reserved.
  • 담당자에게 메일 보내기[새창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