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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자부심의 안팎
작성자 진익선 등록일 2021-08-19 조회수 580

영화 ‘미나리’가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여우조연상을 따냈다. 미나리는 미국 중에서도 가난한 오지로 알려져 있는 아칸소에 정착하려는 한국계 이민자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미국적 정서를 대변하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낯선 곳에서 정착하는 가족이 겪는 아픔이라는 보편적 정서를 잘 그려낸 작품이라는 점에서 전 세계인의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미나리’는 어원적으로 ‘물에서 나는 나리[百合]’라는 뜻이다. 물의 고어형 ‘믈’에 ‘나리’가 더해져 형성된 ‘믈나리’에서 ‘미나리’에 이르렀다. 이런 구성을 보이는 단어들이 몇 개 있는데, ‘미더덕’도 ‘물에서 나는 더덕’이라는 뜻으로 합성된 단어로 추정되고, 냇물이나 강물에 들어가 몸을 씻거나 노는 일을 뜻하는 ‘미역’도 물을 뜻하는 ‘미’에 접사 ‘여귀’가 더해져 만들어졌다는 학설이 있다.
 
 
 
‘나리’ 자체가 이미 주로 햇볕이 잘 안 드는 숲이나 나무의 그늘 또는 서늘한 곳에서 자라듯이, ‘미나리’도 물가나 습한 곳, 혹은 음지에서 자란다. 작품의 제목이 암시하듯이, 영화에서도 가족이 정착하려는 땅은 밝고 화려한 도시가 아니라 가난하고 어둡고 외딴곳인 아칸소이다.
 
 
 
그리고 미나리가 물만 있으면 살아가는, 특히 더러운 물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이듯이, 영화의 가족들도 미나리처럼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면서 강한 생명력과 끈기로 살아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정이삭 감독도 미나리의 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이 자신의 가족과 닮았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미국에 이민 온 1세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는 아칸소의 작은 농장에서 자랐으며, 자신을 돌봐주기 위해 한국에서 온 할머니가 가져온 미나리가 다른 채소보다 두드러지게 잘 자라는 모습이 기억에 강렬히 남아 있다고 했다.
 
나아가 미나리는, 주인공 스티븐 연이 밝혔듯이, 땅과 주변의 물을 정화하는 기능을 하는데, 이는 평화를 사랑하는 한국계 이민자들이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지를 상징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여기서 미나리는 다시 ‘나리’, 즉 ‘백합’으로 돌아온다. 백합의 꽃말은 순결과 변함없는 사랑이다. 정감독도 미나리는 ‘가족 간의 사랑’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제 왜 우리 선조들이 미나리를 물에서 자라는 백합이라고 했는지 분명히 알 것 같다.
 
 
 
특이한 것은 윤여정은 조연인데도 주연 같다는 점이다. 바로 이것이 미나리가 상징하는 또 다른 의미이다. 앞에 나서서 이끌어가지는 않지만 뒤에서 은근히 모든 사람들을 움직이니 땅과 주변의 물을 정화시키는 미나리와 흡사하다.
 
 
 
그녀의 수상소감 또한 기가 막히다. 항상 당당한 모습이 자랑스럽다. 그녀의 연설에는 항상 유모어가 돋보이는데 이는 당당함에서 나온다. 그녀의 이 같은 당당함은 최근 들어 특히 아시아인 혐오가 기승을 부리는 시점이라 더욱 돋보인다.
 
 
 
윤여정, 그녀는 완벽하다. 다만 모든 완벽함에는 옥에 티가 있듯이 그녀에게도 하나가 있다. 그것은 스스로의 이름을 ‘윤 여정’이 아니라 ‘여정 윤’으로 부른 것이다. 그녀는 수상소감 모두에 이렇게 이야기한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내 이름은 ‘여정 윤’입니다.
내 이름을 (‘여정’의 로마자 표기가 Yuh-Jung이어서) 어떤 유럽 사람은 ‘여영’이라고 또는 ‘유정’이라고 발음하는데 오늘 밤은 모두 용서하겠습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자기 이름을 소개할 때 순서를 서구식으로 바꾸어 ‘이름-성(姓)’의 순서로 말한다. 서양인이 이름을 물어올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흔히 “My name is 철수 김”이라고 대답하는 것을 흔히 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세상 어디에도 말해지지 않는 방식을 왜 스스로 행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혹자는 이렇게 답한다. 거꾸로 해야 서양인들이 성과 이름을 제대로 알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서양인들이 자기 이름을 말할 때 성과 이름을 제대로 알도록 동양식으로 해 주는가? ‘마이클 잭슨’을 ‘잭슨 마이클’이라고 해 주는가?
 
 
 
배려의 발로인지 사대주의의 발로인지 알 수 없지만 이제는 이를 바꾸어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내 이름을 서양인에게 알릴 때 내 이름을 그대로 말한다. 그러고는 성과 이름을 구분해 준다. 그렇게 하여 한국의 성과 이름의 순서도 함께 알려 준다.
 
 
 
동양인의 경우에 매우 유명한 정치인들은 서양인들이 원래의 순서대로 알고 있다. ‘마오쩌뚱’을 ‘쩌뚱 마오’라는 서양인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박정희’, ‘문재인’, ‘김정은’ 등도 원래 순서대로 알고 있다. 이는 그들도 원래의 순서를 존중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 우리 스스로가 먼저 우리의 것을 왜곡할 필요가 없다.
 
 
 
유럽대륙에 있지만 동양처럼 성을 이름보다 앞세우는 나라가 하나 있는데, 이는 헝가리이다. 헝가리에서는 외국인에게 자신의 이름을 쓸 때 거꾸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외국인의 이름은 원래 순서를 존중하지만, 전통적으로는 자기들의 어순으로 바꾸어 불렀다. 종교개혁의 선구자 쟝 칼뱅(Jean Calvin)도 칼빈 야노스 (Kálvin János)로 자국화하였고, 프랑스의 유명 작가 쥘 베른(Jules Verne)도 베르네 쥘라(Verne Gyula)로 자기네 어순으로 바꾸어 불렀다.
 
 
 
이제 바야흐로 한국의 문화가 세계로 퍼지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와 우리의 것을 있는 그대로,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 헝가리까지는 못 가도 근처까지만이라도 가자!
 
 
▶ 박만규 아주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
-인문학 아카데미아 원장
-디지털 휴머니티 연구센터 센터장
-불어권협력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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