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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취불귀 -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몸과 마음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3-08-12 조회수 5951

불취불귀 -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몸과 마음

손정훈

(아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不醉不歸(불취불귀) - 허수경

 

어느 해 봄그늘 술자리였던가

그때 햇살이 쏟아졌던가

와르르 무너지며 햇살 아래 헝클어져 있었던가 아닌가

다만 마음을

놓아 보낸 기억은 없다
마음들끼리 서로 마주 보았던가

아니었는가

팔 없이 안을 수 있는 것이 있어

너를 안았던가

너는 경계 없는 봄그늘이었는가

마음은 길을 잃고

저 혼자

몽생취사하길 바랐으나

가는 것이 문제였던가, 그래서

갔던 길마저 헝클어뜨리며 왔는가

마음아

나 마음을 보내지 않았다

더는 취하지 않아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길이

날 묶어

더 이상 안녕하기를 원하지도 않았으나

더 이상 안녕하지도 않았다
봄그늘 아래 얼굴을 묻고

나 울었던가

울기를 그만두고 다시 걸었던가

나 마음을 놓아 보낸 기억만 없다

 

스물 서너 살 무렵, 그 때도 봄 꽃 그늘이었다. 등산로 입구의 막걸리 집에 자리를 잡자마자 선생님은 주머니에서 복사된 종이 몇 장을 꺼내 우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도토리묵과 막걸리 사발이 나오고 술잔이 채워지는 동안 우리는 시를 읽었다. 누군가 물었다. 무슨 뜻인가요? 다른 사람이 대답했다. 취하지도 말고 집에도 가지 말라는 건가? 또 다른 이들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술도 안 취하고 집에도 못가겠으니 미치겠다는 거지... 취하지 않으면 집에 안 보내준다는 거 아닌가... 그렇게 떠드는 동안 우리의 막걸리 빈 병은 늘어갔고 우리는 오랫동안 헝클어졌다.

그 후로 20년 가까운 시간동안 나는 삶의 여러 모퉁이에서 이 시를 떠올리곤 했다. 때로는 마음을 놓아 보내질 못해서, 때로는 팔 없이 안을 수 있는 것을 찾다가, 때로는 갔던 길마저 헝클어뜨리고 돌아오는 그 놈의 마음 때문에... 마음은 몸보다 더 말을 듣지 않는다. 사랑에 빠질 때는 몸이 마음보다 먼저 알고, 사랑에서 빠져나올 때는 몸보다 마음이 더 오래 남아 앓는다.

어떤 시는 그것이 들려주는 소리 때문에 읽고, 어떤 시는 그 속에 담긴 이야기 때문에 읽는다. 앞엣것이 고려가요 같은 것이라면 뒤엣것은 사랑의 시들일 것이다. 나는 이 시를 이미지 때문에 읽는다.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와는 별도로, 군데군데 박혀있어 내 마음을 붙들어 매는 이미지들. 그 이미지들을 통해 이 시는 사랑의 시가 되기도 하고 친구를 찾는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이 시가 보여주는 이미지들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내 마음이 그리는 그림의 조각들이다.

 

(2009.05, 아주대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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